도련님 무휼과 호위무사 방원
저잣거리에 피바람이 불었다. 상인들과 행인은 두려움에 건물안에 숨어 눈치만 살피기 바빴고 8척은 될 것 같은 훤칠한 키에 딱 봐도 값이 나갈 것 같은 비단옷에, 단정하게 상투를 튼 무휼은 그 어느곳을 응시하지 않고 멍하지 눈앞에서 펼쳐진 혈투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복부를 찔려 피를 흘리는 자, 목을 깊이 베이는 바람에 봇물터지듯이 쏟아져나오는 피를 어쩌지 못하고 흰 눈깔을 보이며 쓰러지는 자, 이와중에도 뒤에서 노렸다가 던져진 표창에 눈을 찔려 분노를 표출하며 자신을 노려보는 자. 괘씸해서 표창으로 눈을 더욱 깊이 찌르자 귀청이 떨어질 것 같은 비명을 지르며 손을 붙잡는다. 하지만 그 손도 금방 호위무사의 칼에 의해 잘려나갔다.
- 어디다 그딴 더러운 손을 얹는거야.
암살자의 허리춤에 달려있는 칼을 뽑아 명치에 꽂았다. 피가 튀어서 옷이 또 엉망이 되었다. 얌전하게 죽여야하는데 항상 자제를 못하고 꼭 이렇게 날뛰고 만다. 바닥에 나뒹구는 자신의 칼을 찾아 흙을 옷깃에 닦고 칼집에 넣었다. 윤대감의 도련님은 또 눈빛이 잔뜩 죽어선 마지막으로 죽인 암살자의 시체를 바라보고 계셨다. 눈앞에서 손뼉을 몇 번 쳐대자 그제서야 어?하며 이쪽을 바라봤다.
- 참나, 대체 가문이 무슨 죄를 지어서 이렇게 툭하면 암살자가 나타난답니까?
- ...내가 너무 늦게 태어나서 그래.
윤대감의 장자인 무휼도령은 부모가 혼인하고 10년만에 생겨난 귀한 자식이고 그 뒤론 예쁜 동생들도 많이 볼 수 있었기에 사랑을 담뿍 받고 자라 밝고 시중들도 잘 살피는 된사람이었다. 하지만 10년사이, 윤대감은 어떻게든 자식을 보고싶다는 욕심에 부인 몰래 무휼이 태어나기 5년전에 씨받이사이에서 아들을 낳았었고 부인이 계속 아이를 낳지 못하면 그 아들을 데려올 참이었다. 하지만 무휼이 태어나며 씨받이와 그의 아들은 까마득히 있고 살았었다.
5년 전, 그 씨받이와 아들이 윤대감의 집을 찾아왔다. 윤대감은 당연히 그녀를 알아보았고 무휼의 모친은 몇 날 몇 일을 울다 결국 기력이 쇠하여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 씨받이는 당당히 안방을 차지하였지만 장자는 여전히 무휼이었다. 때문에 씨받이 아들은 대놓고 그를 죽이기위해 혈안이었고 이를 눈치챈 윤대감이 호위무사를 구한다는 벽보를 붙였고 그렇게 들어온 호위무사들은 오래버티지 못하고 죽어버렸고 마지막으로 들어온게 이방원이었다. 방원은 육감이 좋았고 모든 무기를 잘 다뤘다. 두사람이 처음 만나 호위무사와 주군의 관계가 된지도 두 번째 봄을 함께 맞고 있을만큼 흘렀다.
- 조금만 일찍 태어났어도 이러진 않았을텐데...
옷을 툭툭 터는 방원의 얼굴에 피가 튀겨서 엉망이었다. 깨끗한 손으로 피를 닦아주었다. 저보다 작은 키로 잘도 8명의 암살자를 잡아죽인다.
- 나도 무술 배울까?
- 됐어요, 도련님이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게 되면 전 또 다시 일 찾아야하잖아.
- 하하하하.
근처 주막에서 손에 묻은 피를 닦아내었다. 차라리 그자식을 죽여버리는건 어때요? 방원이 암살자와 싸울 때마다 자신에게 하는 말이다. 천한 씨받이이고 그에 못지않게 천한 출신인건 사실이지만 죽일 수 없었다. 오죽 답답했으면 그러했겠냐며 이해하려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자꾸만 떠오르고 못된 맘을 먹을때마다 꿈에서 어머니가 꾸짖었다. 착해빠진 어머니. 그리고 착해빠진 자신.
- 뭐해요? 가요, 책 사신다며.
- 응.
깔끔해진 얼굴로 자신을 부르는 방원에 무휼은 다시 웃음을 머금고 반 걸음 앞장 서서 걸었다. 책방에 도착하여 안으로 들어가는 무휼과는 반대로 방원은 밖에서 칼집을 품에 안고서 집을 지지하는 기둥에 몸을 기대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가만히 바라봤다.
- 형, 밖에 있을거야?
- 그럼요?
- 나 안에서 공격당하면 어쩌라고...
- ...에이씨.
갖고 싶던 서적이 보이질 않는지 무휼은 한참을 뒤적거리며 어딨지?만을 반복했다. 방원도 지루해지기 시작해 눈 앞에 보이는 책을 꺼내 펼쳤다. 군자는 도를 걱정하고 가난을 걱정하지 않는다. 염병. 하필 골라도 재미없고 구질구질한 논어다.
- 글 읽을 줄 알아?
- 참나, 저 벽보보고 지원했거든요?
- 아, 그렇구나! 하하하!
찾는다는 책은요. 없어, 그냥 가야될거 같아. 대답을 듣자마자 인상이 잔뜩 구겨진다. 왜 밖을 나와서 아까 같은 사단이 나게 만들고 자신을 고생시켰냐는 원망의 눈빛이었다. 두 손을 비비며 사과하자 한숨을 쉬며 책을 다시 원래자리에 놓는다.
- 방원이형.
- 또 뭐요.
그런데 팔이 어딘가 모르게 부자연스럽다. 불편한지 왼팔을 자꾸만 돌리던 것이 떠올라 그의 어깨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아! 순간적으로 고통을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고 무휼은 한숨을 쉬며 그를 질책했다.
- 역시 맞았구나, 왜 말 안했어? 의원한테 가자.
- 그냥 멍들고 말았을거에요, 괜찮습니다.
- 그걸 어떻게 장담해?
- 칼잡은지 10년이 넘었어요, 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알아요.
- 내가 형 몸을 모르니까 나랑 의원한테 가.
- 도,도련님! 야!
기어코 방원을 의원에게 맡긴 무휼은 한껏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으며 병상에 앉아 왼쪽 어깨에 침을 맞고 있는 방원을 바라보았다. 시선이 부담스러워 방원은 괜히 고개를 반대로 돌려 아무것도 없는 벽을 바라보았다.
- 필요없다니까요.
- 더 건강한 몸으로 날 지키면 되는거지 말이 너무 많네.
검을 다루는 사람이라서 그런가 몸이 말랐지만 다부졌다. 와, 접히는 살도 하나도 없냐. 괜히 배와 옆구리를 쿡쿡 찌르자 뭐하는 짓이냐며 기겁을 하는데 침맞고 있으니 가만히 있으라고 하자 바로 빠드득하고 이를 갈더니 얌전해졌다. 시선을 아래로 떨구자 옆에 내려놓은 칼이 보였다. 자신과 방원을 지켜주고 있는 칼. 무휼은 칼을 한번 쓰다듬었다.
- 형, 형 싸울 때 멋있는거 알아?
- 뭐가요?
- 몸이 크게 움직일때마다 머리칼이 흩날리는데,
머리를 전부 끌어올려 상투를 튼 자신과는 다르게 방원은 딱 반만 상투를 틀어 나머지 머리칼은 움직일때마다 흔들렸다. 무휼은 쇄골까지 길게 내려온 머리카락을 조금 제 앞으로 끌어와 입을 맞추었고 그의 행동에 방원은 벙찐 얼굴로 바라보고만 있었다.
- 나도 모르게 정신놓고 보고 있다니까.
초승달처럼 눈을 휘며 얘기하는데 갑자기 가슴한켠이 먹먹해지고 답답해진다. 괜히 주먹으로 가슴을 쿵쿵 두드리자 무휼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선 두 손으로 방원의 주먹을 감싸쥐었다.
- 형, 왜그래? 속 안 좋아?
- 아뇨, 그런건 아닌데...그냥 갑자기 답답해서...
중얼거리는 방원의 얼굴이 붉다. 답답하다는 말을 들은 무휼의 가슴도 답답해지고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저도 모르게 방원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갔다. 살짝 닿은 입술이 떨어지고 무휼의 가슴은 조금전보다도 미친듯이 뛰기 시작했다. 방원의 표정이 이상하다.
- 지금은?
- ...
- 가슴이 엄청 뛰지않아?
눈썹이 저혼자 바삐 움직이더니 이내 무슨 결심이라도 한 듯 이번엔 방원이 먼저 천천히 고개를 가까이 다가갔다. 어, 너 침맞고 이러면 안 될텐데...역으로 무휼이 당황해 우물쭈물하며 방원의 눈을 피하더니 이내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서로의 콧바람이 느껴질정도로 가까워졌다 다시 멀어졌고,
- 아!
무휼의 머리 위론 방원의 칼집이 떨어졌다.
- 어디서 건방지게, 의원어르신 이거 침 뽑아도 될 것 같은데.
- 어이쿠, 내 정신 좀 보게. 환자가 많아서.
- 괜찮습니다. 가보겠습니다.
의원이 침을 다 뽑자마자 옷매무새를 다시 다듬은 방원은 무휼을 흘끗 쳐다보고는 밖으로 나가버렸다. 멍하니 그 뒷모습만을 쫓던 무휼은 뒤늦게 의원에게 값을 지불하고 급하게 따라나와 방원을 소리치며 불렀지만 전혀 뒤를 돌아보지 않아 있는힘껏 달려 그의 손목을 겨우 붙잡았다.
- 형! 호위무사가 그렇게 혼자가기 있어!? 입 한번 맞춘걸로 너무하는거 아냐?
- 야! 너 사람많은데!?
무휼의 말을 정확히 알아들은 몇몇은 저들끼리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 ...야아?
하지만 이 철딱서니 없는 도련님은 웅성거림보단 자신이 반말을 했다는 것에 더 화를 내고 있었다.
- 후...도련님.
- ...응.
- 자라나는 과정에서 감정을 착각하실 수는 있어요, 하지만 저한테는 그런짓하지 말아주시죠.
- ...
- 갑시다.
대충 알아 듣길 바라며 다시 걸어가려했지만 붙잡힌 손아귀의 힘이 생각보다 강하여 앞을 나아가지 못하고 결국 또 뒤를 돌아보고 말았다. 무휼의 표정이 이상했다.
- 착각아니면?
- 도련님?
- 착각이 아니면? 내가 꽤 된거면 어떡하려고?
- ...
- 떠나려고?
떠난다니, 당장 자신이 없어지면 내일 사체로 발견되도 이상하지 않을 사람이 죽음이 두렵지도 않는 것일까. 짧게 탄식섞인 웃음을 뱉으며 방원은 붙잡힌 손을 천천히 떼어내었다. 풀려난 손을 그대로 주먹을 쥐며 방원을 바라보는 무휼의 눈동자가 안정적이지 못했다.
- 그럴 순 없죠.
방원의 대답에 무휼의 표정이 아주 조금 덜 이상해졌다.
- 포기하게 해드릴 순 있겠죠.
- 형!
하지만 덧붙인 대답에 다시 표정은 이상해지고말았다. 혼란스러운 눈빛. 방원은 떨리는 무휼의 손을 감싸며 앞으로 잡아끌었다.
- 댁으로 돌아가시죠, 도련님.
서로의 감정에 대해 쉬이 정의를 내리지 못한 두사람의 뒤얽히는 시선은 벼랑끝의 아기 사슴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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