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조금의 돈만 더 모였더라면 값비싼 주거복합단지를 이루었을 것이지만 지금은 그저 거의 다 지어졌지만 사람이 살지 못하는 폐건물, 뼈대도 세우지 못한 채 땅만 고르게 정리된 공터. 이 곳은 방원의 집이자 직장이였고 은밀하고 위험한 곳이었다. 진로를 방해하는 썩어가는 시체들에 방원을 쫓아 여기까지 들어온 당사자는 역겨운 냄새에 구역질날 것 같았다.
- 하아, 적당히 발악하고...좀 뒤져.
- 헉...내가 죽으면 너네 조직은 더 난리날걸?
- 아니니까 좀 죽을래?
- 네가 먼저 죽을 것 같네. 여기가 어디라고 따라와.
눈을 가려도 앞에 뭐가 있는지 훤히 보일 정도로 이 곳은 방원에게 익숙했다. 아주 어릴적부터 비밀아지트 같은 곳이었고. 지금도 좋은 공간인건 변함이 없었다. 비록 유쾌하고 즐거웠던 추억위로 나이를 먹고 깨끗하지 못 한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추악하고 비열한 악행이 씌워져가 예전의 따뜻함은 사라졌지만 이 곳만이 유일하게 방원이 의지할 수 있는 장소였다.
욱신거리는 갈비뼈 부근을 손바닥으로 짓누르며 아무렇지 않은 척 대화를 이어가지만 숨을 한 번 들이마시고 내쉴때마다 죽을 맛이다. 무턱대고 저를 쫓아올만큼 단순한 상대는 몇 마디 안 되는 도발에 품에 숨겨두었던 총을 꺼내 방원의 이마를 향해 겨누더니 그대로 매섭게 노려보았다.
- 머리 뚫어버린다.
- 그거 너만 있는거 아냐.
- 네가 꺼내기전에 죽ㅇ,
호기로운 표정으로 이야기하던 상대는 말을 더이상 이어가지못하고 쓰러졌다. 이질적인 총성과 함께 뒤에 가려져있던 사람의 모습이 드러났다.
- ...아.
혀를 차며 총을 품안으로 다시 넣고는 쓰러진 자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발작하듯 몸이 몇 번 움직이는가 싶더니 이내 잠잠해졌고 혹시나싶어 코근처로 손가락을 대보지만 손끝에 닿는건 추운 겨울바람뿐이었다.
- 공포탄이 아니었나보네...미안해서 어쩌나.
영혼없는 변명에 저까지 기운이 빠져 바닥에 주저앉았다. 무휼. 무전기를 꺼내려던 무휼은 이름을 부르자 시선을 돌리는가싶더니 아예 이쪽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 무슨짓이야.
- 말 그대로야. 공포탄인줄 알았어.
- 그걸 지금 뻥이라고 치는거야?
- 그래도...형이 살았잖아.
- 너 이러면 공범이야.
- 우리 여기 정말 좋아했는데...그치?
복귀 명령이 떨어졌음에도 얼핏 보이는 방원의 모습에 뒤를 쫓아오긴 했지만 사실 이 곳에 발을 다시 딛은 건 10년만에 처음이었다.
- 멀쩡한 문도 따보고 비비탄총가지고 스파이놀이도하고.
철없던 시절의 놀이가 떠올라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뭐든 재밌던 때. 지금처럼 관계가 틀어지지 않았던 때. 두 사람은 이웃사촌이였고 친형제보다도 가까웠다.
- 이제와서 추억팔이하고 싶지 않아. 내가 무슨짓을 했는지 잊었어?
하지만 그 관계는 방원으로 인해 틀어지고 말아, 무휼은 그대로 이 곳을 다시는 찾지 않았다.
- ...그걸 어떻게 잊어. 그 때만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형 죽여버리고 싶어.
방원의 말에 머리로 모든 피가 쏠리는 기분이 들었다. 달콤한 추억 위로 쓰고 구역질나는 악몽같은 추억이 다시 얹어졌다. 주저앉아있는 방원의 멱살을 잡고는 들어올려 주먹으로 얼굴을 가격했다. 방원은 반동으로 몸이 기울면서도 그와중에 다리를 들어 무휼의 허벅지를 강하게 찍어눌렀다. 체중이 더해져 완강히 버티기엔 무리가 있었고 결국 한 쪽 다리가 꿇어졌다. 멱살을 잡던 손이 풀어지면서 방원은 조금 휘청이긴 했지만 금방 중심을 잡고 무휼을 내려다보았다.
- 하아...근데 왜 도와줬어. 안 그랬으면 머리에 총 맞고 죽은 사람은 저 녀석이 아니라 나였을텐데. 내가 이대로 네가 날 도왔다. 형사 윤무휼은 공범이다...이러면 어쩌려고?
- 난 정말 미치게 형을 죽여버리고 싶어.
'윤무휼, 어디야? 무전들리면 빨리 복귀해.'
- ...근데...그런데...
독기서린 눈빛과는 다르게 위태로운 목소리에 하마터면 옛날처럼 껴안고 위로해줄뻔했다. 한 번 들리기 시작한 무전은 근방에 있는지 제법 여러번 소리가 들려왔고 모두 무휼의 복귀지시를 내리는 내용이었다.
- 그럼 너한테 받는 마지막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치자.
자켓안으로 보이는 무전기를 꺼내 이 곳의 위치를 알렸다. 정말 코앞에 있었는지 바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고 자신의 행동에 무휼은 꽤나 놀란 표정이었다. 언제봐도 참 멍청한 표정이구나. 망신창이인 몸이라 힘이 없어 웃고 싶은데 웃는것처럼 보일지는 확신이 없었다.
- 뭐한거야?
- 너 복귀하라고. 난 안 잡힐거야.
무전기를 다시 품에 넣으면서 이번엔 총을 잡았다. 빼내려는 손을 붙잡으며 그대로 수갑을 채워버리는 행동에 눈을 마주하자 보란듯이 자신의 손목에도 수갑을 채워버렸다. 퍽 가까워진 사이렌소리는 건물주변까지 왔는지 뚝 끊어지더니 또 다시 무전이 들려왔다.
'무휼. 너 그자식들이랑 같이 있는거야? 무사해?'
- 무사하냐고 묻잖아. 가서 무사하다고 해.
- 혼자 안 가.
- 그럴리가.
수갑이 채워진 손을 역으로 밀어 무휼을 눕혀버리곤 위에 앉아 내려다보았다. 끙끙거리며 일어나려 발버둥쳐보지만 한쪽손이 붙잡힌채 움직이기엔 한계가 있었고 방원은 보란듯이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는가싶더니 그대로 여유롭게 수갑을 풀어버렸다. 무휼에게서 빼앗은 총을 그대로 품에 넣으며 천근같은 몸을 일으켜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