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한 번 진하게 하고나면 잠이 쏟아져서 눈 뜨면 새벽녘이고 방지는 없고 그랬다. 그랬는데 오늘은 어째서인지 잠이 오질 않아 협탁에 올려놓은 담배갑을 집어 담배를 한 개 꺼내 입에 물고 불까지 피웠다.
- 그렇게 담배피니까 배 나오는거에요.
키득거리며 뱃살을 쿡쿡 찌르는데 괜히 울컥해져 얼굴에 담배연기를 뿜었다. 콜록거리며 짜증을 내는 그에게 무휼도 입술을 삐쭉 내밀며 덩달아 기분 나쁨을 표출했다.
- 술 때문이야.
왜 죄없는 담배한테 그래. 무휼은 툴툴거렸다. 그래도 옷입으면 티도 안나고 힘주면 벗고 있어도 티가 안나는데 자기몸이 좋다고 당당한건지 툭하면 뱃살을 찌르고 놀린다. 어린놈이.
- 나도 술 마시고 싶네.
- 운동선수가 무슨 술이야.
- 근데 신기하다, 형도 진짜 농구했어요?
- 난 너가 신기한데? 그 키에 농구가 되니?
- 이 아저씨가?
농구. 키도 크고 운동신경도 나쁘지 않아서 꽤 이름있는 선수가 될거라고 주변도, 무휼 스스로도 확신하고 있었다. 촉망받던 신예는 몸싸움을 하다가 잘못 넘어지는 바람에 무릎이 깨졌다. 덕분에 뛰거나 점프할 수 없는 짝짝이 다리가 되었다. 그래도 농구에 미련을 못 버리고 농구선수들을 후원해주는 회사에 취직해서 일하고 있었다. 괜히 또 자신의 꼴이 우스워 혼자 쓰게 웃으며 담배를 또 한 모금 빨았다.
멍때리고 있었는데 입이 허전해졌다. 그래봤자 범인은 뻔했기때문에 고개를 돌리니 자연스럽게 입술을 맞춘다. 피하지않자 어깨를 붙잡곤 더 진하게 키스를 해왔다. 꼬맹이가 많이 늘었다.
- 담배 피우지 마요, 키스하는데 졸라 맛없어.
- ...돈 달라고?
혀까지 섞으면 5만원이었나. 요즘은 발칙하게 무휼이 해달라고 하기도전에-해본적도 없었다- 자기가 키스하는 주제에 돈까지 달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휼은 순순히 돈을 쥐어주었다. 돈으로 얽힌 관계인데 돈을 주지 않으면 관계가 끊어질까봐 두려웠기때문이었다.
- 오늘은 안 받아요.
지갑쪽으로 뻗은 손을 저지하곤 입에 다시 담배를 물렸다. 후우, 또다시 얼굴에 담배연기를 뿌렸다.
- ...왜?
- 대신 자고 가게 해줘요.
- ...
- 세달째 만나고 있는건데 한번쯤은 재워줄 수 있는거 아닌가?
- ...우리가 벌써 그렇게 됐나?
빠르네. 이 어린놈한테 혹하고 넘어가서 내 돈을 쏟아부은지가 3개월이라니. 담배를 끄고 배게로 허리를 받쳤다. 왜 이렇게 잠이 안 오지?
- 있잖아요, 나 아저씨말고 두명 더 있는데.
- 뭐?
- 들어봐요.
목 여기저기를 마구잡이로 깨물고 배를 만지작거리는게 짓꿎고 밉다. 왜 자꾸 배를 만지는건데에. 갑자기 뱃살있는게 서러워져서 목소리까지 떨렸다. 무휼의 반응에 방지는 키득거리며 귀엽다고 뺨에 뽀뽀하고 입술에 키스했다.
- 두 명이나 있긴한데 그래도 아저씨가 제일 좋아요.
배에 있던 손이 아무것도 입지 않은 아래로 내려갔다. 뒤늦게 붙잡아보았지만 이미 늦었다. 몸에 힘이 풀려 앉아있지도 못하고 주르륵 미끄러져 드러누워버렸다. 무휼이 눕자마자 방지는 위에 올라타 그를 내려다보았다.
- 아! 야, 잠깐만...
- 그러니까 나 자고가게 해줘.
- ...
- 네?
깜빡 잠이 들었지만 1시간만에 잠이 깨고 말았다. 하아, 결국 일어난김에 옷을 다시 입고 냉장고에 있는 맥주를 꺼내 마셨다. 얇은 맥주캔을 찌그러뜨려 쓰레기통에 버리곤 양치를 하고 다시 누웠다. 옆에서 방지는 세상모르고 잠에 빠져있었다.
- 꼬맹아, 방지야.
최근에 짧게 친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고보면 항상 자신이 먼저 잠들어버리는 바람에 방지가 자는건 지금 처음 보는 것이었다. 수염도 안 올라오는 매끄럽고 깔끔한 얼굴에 남자면서 얼굴도 뾰루지하나없다. 쓸데없이 잘생겨선 심장에 너무 안 좋다. 이렇게 새파랗게 어린놈한테 반해버린 스스로가 한심하면서도 부정하고싶지 않았다.
- 나랑만 하면 안될까? 그 두사람 합친거보다 많이 줄 수 있는데...
때문에 자꾸 욕심을 내고 바라는게 저도 모르게 많아졌다. 사실 지금 나가는 금액도 절대 적은 축은 아니었지만 조금이라도 방지와 더 자주 만나기 위해서 필요한것도 결국은 돈이었다.
- 지금도 많아요.
- 어...아,안잤어?
- 깼어.
나이많은걸 알면서도 이렇게 반말하는 그가 너무 좋았다. 덩달아 자신도 어려지는거 같은...아, 방금 굉장히 연하와 바람피거나 원조교제하는 여자들의 흔한 핑계를 자신도 생각하고 말았다. 큭. 어이가 없어서 웃으니 방지가 왜 그러냐고 또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무휼의 대답을 들은 방지는 그를 품에 안았다.
- 아저씨랑만 할게요.
- ...
- 대신 밤에 부를 땐 나 재워줘요. 침대가 너무 좋다.
- ...응.
- 자요, 아저씨.
- 어,어어...
맨가슴이 이렇게 닿는데 자라고? 그게 돼? 무휼은 괜시리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 아저씨.
- 응?
- 내일 아침 먹고 장 좀 봐요, 먹을게 하나도 없어.
- 내가 알아서 해!
쓰읍, 고개 들지마요. 반항심에 치켜든 머리는 금방 다시 가슴팍에 묻히고 말았다. 터질것같은 자신과는 다르게 방지의 심장은 참 주기적이었다.
- 빨리 자요, 내일 나가게.
- ...어린놈이.
그래도 맥주를 마신덕일까 무휼은 몇 번 숨을 고르더니 금방 잠이 들었다. 방지는 그렇게 자신보다 먼저 잠든 무휼에게 늘 그랬듯이 손을 잡아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 오오.
장을 보고 돌아가는 길에 들른 스포츠매장엔 신상 운동화가 비치되어있었다. 보는것보단 직접 신어보는게 제일이니 한번 신어보았는데 굉장히 가벼운건 당연하고 바닥에 잘 미끄러지지도 않았다. 어때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무휼은 방지의 질문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역으로 물었다.
- 사줘?
- ???
- 아니...갖고싶어하는거 같아서.
굉장히 어이없어하는 표정에 괜히 주눅이들어 들고있던 장바구니끈만 꼬았다 풀기를 반복했다. 찌질해보였을까, 무휼은 고개도 못 들었다.
- 아저씨.
- ...응.
- 나 어디 안가요.
운동화는 결국 사지 않았다. 잠만 재워달라던 놈은 알차게 저녁까지 다 얻어먹고는 그제서야 야간훈련받겠다며 무휼의 집을 나갔다. 다음에 또 봐요, 아저씨. 싱그럽게 웃으며 현관문을 나서는 그에게 덩달아 웃으며 배웅했다. 오늘로 몇 번째 만남이었는가, 언제부턴가 헤아리는건 무의미해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