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딩 대리님
본체님들 이름쓰니까 너무 RPS같고.....(울화통)
수업 시간, 쉬는 시간 가리지 않고 자던 학생들도 그나마 잠을 깨고 움직이는 점심 시간. 최근에 공부를 꽤 놓아서 균상은 급식을 먹는 대신 가볍게 끼니로 먹을 수 있는걸 집에서 가져와 공부하면서 먹는걸로 대신하고 있었다. 멀쩡히 잘 보고 있던 영어 문제집이 누군가의 손에 의해 덮어지고 잔뜩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자 툭하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시비를 걸며 돌아다녀 다들 기피하는 흔히 말하는 일진들이 서있었다.
- 왜 방해야.
- 야, 졸업한 변요한선배 게이라며?
- ...뭐?
저들끼리 눈을 마주치며 키득거리는 모습에 균상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멀쩡히 학교 잘 다니고 선생님들한테 칭찬받으면서 졸업한 선배가 왜 말도 안되는 소문이 퍼져있는건지 이해 할 수 없었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 무슨 개소리야.
- 어떤애가 그 선배가 어떤 남자랑 키스하는걸 봤데, 존나 더러워.
- 시발, 여학생들 고백 다 차는 이유도 게이라서였냐?
- 넌 뭐 아는거 없냐? 맨날 붙어다니잖아, 야동도 막 남자들만 나오는거 보냐?
남자는 어떻게 하냐? 역겹다는 듯 헛구역질하는척 연기하며 제 앞에서 굳이 얘기하는 건 무슨 경우일까. 물론 서로 아주 어렸을때부터 옆집에서 살았고 그만큼 터울없이 지내왔다. 운좋게 중학교와 고등학교도 같은 곳으로 배정을 받아서 2살터울이라 적어도 1년은 함께 학교를 다녀왔다. 돈 믿고 버릇없이 군다는 소리를 듣는 자신과는 다르게 항상 예의도 바르고 어른스럽다며 호평의 호평속에서만 살아왔고, 대학을 들어간 지금도 그렇게 지내고 있을 것이었다.
물론 솔직히 말해서 그가 소문처럼 남자를 좋아한다면 자신의 입장에선 두말할것없이 고마운 소식이었다. 곧아보이는 사람이라 감히 고백을 못하고 있어서 그렇지 좋아한지도 꽤 되었고 근거없는 자신감이지만 고백하면 그가 절대 거절할리 없을것도 같았다.
그래도 이런 근거없는 무근본 소문은 듣기 역겹고 짜증만 날 뿐이었다.
- 키스하는걸 어떤 새끼가 봤는데? 증거있어?
- 몰라.
- 근데 왜 나불거려, 닥치고 꺼져.
- 그 남자가 너야?
문제집을 다시 펼치기 위해 표지를 쥐었던 손이 멈추고 만다. 제 반응이 재밌는듯 또 기분나쁘게 웃는 녀석들. 고개를 들자 몇 명은 움찔하며 피하지만 주도자는 여전히 입꼬리를 올린다.
- ...뭐?
- 너냐고, 크큭...시발 하긴 그렇겠다, 그 선배 너랑만 놀았는데 너말고 더 있겠냐. 야, 그래서 네가 박혀?
- 머리속에 섹스밖에 없어? 단어나 외우지 그래? 오늘도 손바닥 찢어지겠다?
- 아니라고 안하네?
- 대꾸할 가치도 없는 소리니까.
- 야, 남자랑 키스하면 무슨 기분이냐?
기어코 제 턱을 붙잡으며 고개를 들게하는 꼴은 어디 삼류 드라마에서 보았는지 모르겠지만 탁,하며 손을 뿌리치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팔을 치자 교실에 조금 남아있던 학생들이 전부 쳐다본다. 귀찮고 짜증난다. 제발 더이상 신경 건드리는 소리만 하지 앟았으면 좋겠다.
- 너같이 무식하고 덜떨어진놈이랑은 키스안해.
- 와, 그래서 요한선배랑은 하냐?
- 이거 이제 보니까 게이는 지면서 퍼지기 싫으니까 졸업한 선배 팔았네.
지랄 좀 작작해! 결국 화를 못 참고 자리에서 일어나지만 일어나기 무섭게 자신을 붙잡는다. 유치하고 수준떨어지고 더럽다. 그러거나 말거나 시비를 붙여온 녀석은 끝까지 웃으며 균상에게 뻔뻔하게도 낯짝을 들이밀었다.
- 내가 뭐가 아쉬워서 여친도 있는데 이러겠냐, 궁금해서라니까.
- 니 새끼들이랑 키스해, 나한테 앵기지 말고.
절대로 먼저 선빵은 날리지 말라고했지만 더이상 들어주고 싶지도, 상대하고 싶지도 않아 먼저 다리를 뻗어 가슴팍을 발로 차버렸다. 맥없이 곤두박질 치는 자신들의 우두머리의 모습에 눈이 뒤집혀 그대로 균상을 덮쳤고 결국 주먹질까지 이어져 다른 학생이 교사를 불러와서야 끝이났다. 그와중에 신고 정신이 투철한 녀석덕분에 반성문을 쓰고 끝날 수도 있었지만 학부모와 경찰까지 소환되어 규모는 커지고 말았다. 수업이고 뭐고 당장 균상의 부모님을 데려오라는 녀석의 어머니는 소리를 질렀지만 비행기타고 멀리나가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금방 달려올리가 없었다.
[알아서 해결해.]
- ...그럴거에요, 필요없다는데 연락한거에요.
[내년에도 집에 들어갈까말까한거 알잖니. 최대한 혼자서 해결,]
- 알아요, 주무세요.
먼저 전화를 끊어버리곤 휴대폰을 그대로 꺼버렸다.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고 경제적인 부분만 지원해주고 자신을 향한 사랑도 관심도 없어진 부모다. 그래도 중학교 들어가기전까진 사랑받으며 자랐지만 두 사람이 일때문에 싸우면서 화풀이를 자신에게 해버리고 자신이 요한과 그의 가족들과 잘 지낸다는걸 알게되면서부턴 워커홀릭의 부모님은 당당하게 해외파견직도 나가고 요한의 가족에게 떠넘기듯 남기고 사라졌다.
- 너 내가 학교 졸업하자마자 이럴래?
- ...뭘.
- 뭘?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거야?
결국 자신이 이렇게 화가나 멍청한 놈들과 치고박고 싸우기까지 만든 장본인을 학교에 부르고 말았다. 복도 창문턱에 걸터앉아 다리를 휘저으며 바닥을 바라보는데 요한이 손을 뻗어 찢어진 입술을 만져와 크게 움찔하며 손을 뿌리친다.
- 아아아! 아파! 꺼져!
- 꺼져? 이게 형한테 못하는 소리가 없네?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연고를 꺼내 손가락에 묻혀 가까이 뻗으니 조금전이 따가웠는지 피해버려 가만히 있으라며 턱을 붙잡자 입술을 잔뜩 씰룩거린다. 꽤 많이 찢어져 피딱지가 져있는 입가는 연고를 바르다 살짝 딱지가 떨어지자 바로 선붉은 피를 흘려 혀를 차며 얼른 밴드를 붙였다. 피도 못 보는 놈이 피딱지가 생길정도로 치고박고 싸웠다니. 무엇보다 절대 선빵은 날리지 말라고했음에도 먼저 선빵을 날리는 바람에 이 사단이 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을땐 절로 정신이 아늑해졌다.
- 걔네는 피 안 났냐? 피보고 또 기절하셨겠네.
- 이제 이정도론 안 기절하거든?
- 그랬어? 많이 컸네~
- ...시발.
- 입.
- 흥.
균상은 조금이라도 붉은 색이 보이면 울었다. 남들 다 좋아하는 파워레인저도 주인공이 빨갛다고 전혀 보지 않았고 붉은 옷은 죽어도 입지 않았다. 그나마 좀 커져선 심리치료를 받아 붉은색자체엔 거부감을 안 느꼈지만 피를 한방울이라도 보면 거품을 물고 기절했다. 역시나 심리치료를 받고는 있지만 요한은 그가 금방 낫지 못할 것이라는걸 어렴풋이 느꼈다.
이유를 묻는다면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균상과 무휼은 많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수 있었다.
요한은 요한이라는 자신의 이름을 불러도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는 자신은 요한이 아니라 이야기해왔다. 변요한이 아니라 이방지라고, 이런 이상한 세상에 살아가던 사람이 아니라며 소리를 질렀고 그의 모습에 당연히 그의 가족들은 당황했다. 정신병원에 가도 소용이 없어 잘나가는 무당에게 데려가자 그가 전생을 기억하고 있다고 말해왔고 믿거나말거나였지만 그의 부모님들은 그 말을 믿고 그가 과도기를 잘 넘길 수 있도록 도왔다. 사실 과도기라고 할것도 없을 정도로 조용하게 지나갔다. 다만 꿈에 따르면 균상이 무휼이 틀림없음에도 자신과는 다르게 조금의 자각도 못하고 있는 그가 걱정되었고 그와중에도 기억을 못하고 있다는걸 알면서도 그저 무휼을 다시 만났다는것에 기뻐했다.
챙겨주다보니 서로에게 큰 영역이 되어있었고 무휼의 새로운 부모님은 그런 자신을 믿고 외국으로 떠났다. 47평 아파트에서 혼자 밥먹고 잠을 자면서도 절대 먼저 놀어오거나 찾아오라고 하지 않았다. 새로 태어난 무휼은 그만큼 고집있고 사람을 싫어했다.
- 일찍 왔구나.
복도에서 대화소리가 들리자 균상의 담임이 회의실 문을 열며 나왔고 회의실안에선 당장 들어오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따지고보면 먼저 시비를 걸며 성질을 건드린건 자신들인 주제에 너무 뻔뻔하다는 생각만 든다.
- 네, 선생님. 일단...사과부터 드릴게요, 죄송합니다.
- 형이 왜 사과해!
누구때문에 피가 거꾸로 돌아서 이사단이 났는지도 모르면서 사과부터 하고 본다는 그의 태도가 무척이나 마음에 안 들었는지 대뜸 두사람의 사이를 가르곤 복도를 내질러 달렸다. 담임이 그를 뒤늦게 불러보지만 아랑곳하지않고 시야에서 사라져버렸고 요한은 그의 철없는 행동에 한숨만 났다.
점심 시간이 끝이나 수업중인 교실에 다짜고짜 들어가선 책가방을 챙겨서 밖으로 나왔다. 그대로 택시를 잡았고, 집을 향했다. 순식간에 집에 도착했고 신경실적으로 가방을 던지며 침대에 드러누웠다.
- 나 뭐때문에 이렇게 열받고 있는거야...사춘기니?
대답을 들을 수 없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건내며 한숨 쉬기를 여러번하다 눈을 감았다 뜨자 처음 보는 낯선 곳이 눈에 보였다.
[뭐해? 멍하니?]
형? 익숙한 목소리가 돌리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지만 그의 모습은 너무나도 낯설어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고 말았다. 거칠게 묶은 머리에 거뭇한 수염과 한복...
[도련님한테 안가봐도 되는거냐?]
도련님? 무슨 소리냐고 다시 물어보려는 찰나 휘파람 소리가 들렸고 딱히 그러고 싶지도 않았음에도 몸은 멋대로 소리를 쫓아 달렸다. 아, 형. 뒤늦게 그의 존재를 깨달아 등을 돌려보지만 그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어 잠깐 벙쪄있는데 다시 한 번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도 누가 시킨것도 아닌데 소리가 나는 방향을 향해 또다시 뛰었다.
가슴은 미친듯이 뛰었고
또렷해지는 누군가의 뒷모습에 자신은 어째서인지 웃었다.
- 일어나, 밥 먹어.
- 우으...
강제로 몸을 일으켜 앉게 만들어 힘겹게 일어나보니 어느새 해가 져 방은 어두워져있었다. 자신을 깨운 그는 학교에서 본 옷과는 다른 옷을 입고 있었고 한적도 없는 음식냄새가 집안을 가득 맴돌았다.
갑자기 잠들어서 그런지 어지럽고 잠도 금방 깨지않아 머리를 손바닥으로 주무르다보니 무슨 꿈을 꾸었길래 옹알이까지 했느냐고 물어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 기억안나.
- 그럼 말고, 너 벌점 받아서 네가 가려는 대학 경영학과 힘들데.
- 다른 낮은데 가서 전과하면 돼.
자신이 무슨대학을 노리고 있는건지도 담임이 말했는지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균상에게 과는 별로 중요하진 않았다. 그저 요한과 같은 대학만 들어가면 되는거였고 이왕이면 자신이 흥미로운 경영이나 회계쪽이 가고싶을 뿐이다.
- 푸흐흐.
- 뭐, 왜?
- 네가 경영학과를 노릴 정도로 공부를 잘하다니.
- 아, 존나...나 원래 공부 잘 했거든? 형보다 똑똑해.
- 그러니까. 어떻게 이렇게 머리가 좋으냐고.
- 시비걸어?
- 왜 또 그렇게 되냐? 그냥 대견해서 그렇지.
대견하다는 표현을 쓰는게 맞는건지는 모르겠지만 여말선초의 난세당시 이 나이엔 글도 못 읽던 녀석이 지금은 성적도 제법 좋아 자신은 힘겹게 들어온 지금의 대학도 수능날 미끄러지지만 않으면 충분히 들어올 정도였다. 머리를 한참 쓰다듬어주다가 손을 거두려고 하자 두 손으로 손목을 붙잡곤 멀뚱히 올려다보는 행동에 살짝 고개를 기울이자 시선을 피하며 작게 중얼거린다.
- 좋으니까 그냥 있어.
- ...근데 너 키 많이 컸다, 조만간 나보다 크겠어.
- 클거야.
- 그래, 무휼이 겨우 이만할리가 없지.
- 뭐?
- 아냐.
- 또 그 이상한 이름 나오네, 대체 뭐하는 놈이야?
자신은 유치원을 들어갔을 때, 균상은 5살이었을때. 옆집 이웃으로 처음 만났고 그가 올 것이라는걸 요한은 알고 있었다. 바로 전날 꿈을 꾸었고, 그 꿈에서 처음으로 무휼이 나왔다. 그 옛날 그랬듯이 입꼬리를 올리고 눈이 휘도록 웃으며 내일 보자고 말하던 그의 모습과는 나이도, 키도, 덩치도, 이름도 어느거하나 겹치는게 없었지만 요한은 그를 처음 보자마자 무휼이라고 불렀고 그 실수는 조금은 고의적으로 아직까지 계속 되고 있다.
균상이 심한 과도기는 안 겪더라도, 조금의 자각은 생겨서 자신을 알아봐주길 바라는 욕심때문이었다.
- ...내 짝사랑.
- 어? 뭐?
밥이나 먹자. 머리를 두어번 두드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먼저 나왔다. 뒷모습까지 사라지고 다시 가스렌지에 불을 켜는 소리가 들리면서 멍해있던 정신이 뒤늦게 돌아온 균상은 몸을 벌떡 일으켰다.
- 뭐? 짝사랑? 야! 변요한!